전국 36만가구가 '위험한 전셋집'에 살고 있다
#1. 결혼 9년차인 양모(40)씨는 집주인의 말만 믿고 있다가 결국 보증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양씨는 악착같이 화물차 운전을 하며 번 돈으로 월세 15만원에서 전세 6500만원의 집으로 이사하기까지 꼬박 9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계약 당시에는 매매가의 50% 밖에 되지 않던 근저당은 집값이 떨어지며 매매가에 육박했고, 상황이 악화되자 집주인은 결국 보증금만 챙기고 집을 경매에 넘겨버렸다.
#2. 직장인 김모(30)씨는 2년 전 근저당이 있는 집을 계약했다. 매매가 20억원에 11억원의 부채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공인중개사의 설명에 의심 없이 전세자금대출 7000만원을 받아 신혼집을 꾸몄다. 하지만 입주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경매에 넘어갔고, 그제야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김씨는 16가구 중 12가구나 전세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각종 법적인 방법을 동원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퇴거해야 한다는 통보의 충격에 어렵게 가진 아이 마저 유산됐다. 결국 김씨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또 다시 전세대출 5000만원을 받아 새로운 주인과 재계약해 살고 있는 중이다.
67주 연속 전셋값이 상승. 매주 최장 기록을 경신하며 끝없이 올라가는 전세대란 속, 전세보증금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3일 올해로만 4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고,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떨어질 줄 모르는 전세가에 서민들의 한숨 소리는 높아져 가고 있다.
최근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에 따르면 더 큰 문제는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틈 타, 세입자들의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경매 넘기기부터 전문 브로커들의 전세대출 사기 등 평생 마련한 금쪽같은 보증금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고 있다.
◆ “내 전 재산 가지고 달아난 집주인 좀 찾아 주세요”
대한민국 전세 370만가구 중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위험 가구만 9.7%이다. 무려 전국 36만가구가 '위험한 전세'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 해 경매에 나온 아파트 수는 2008년 1만2800건에서 2012년 2만8700건으로 2배 이상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위험 전세' 가구의 위험성이 입증되고 있다.
치솟는 전세가에 비해 상승비율이 적은 매매가 때문에 힘에 겨운 집주인들이 하나 둘 집을 포기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집을 경매에 넘겨버리는 나쁜 집주인들 탓에 세입자들만 보금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세보증금 피해자 A씨는 “집주인이 진작 해결해줄 것 같았으면, 1년이란 세월 이렇게 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면서 “하다못해 찾아와서 미안하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찾아와본 적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전세금을 못 받게 될지는 몰랐다”며 “법원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우선순위 확정일자 같은 것만 있으면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 구멍난 세입자 보호정책…“내 보증금을 지켜주세요”
확정일자와 전세권설정만 잘해놓으면 걱정 없을 거라 생각하는 세입자들의 생각과 달리 경매에 넘어갈 경우, 낙찰가를 보증할 수 없어 하루 아침에 집을 잃어버리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소액 임차인을 보호하는 최우선변제도 기준 금액이 평균 전세가 1억7500만원보다 훨씬 작은 4000만~7500만원으로 설정돼 있어 요즘과 같은 높은 전세가에는 먼 나라 이야기다. 높은 전세가 속 매물이 없는 탓에 근저당이 잡혀있더라도 계약할 수밖에 없는 세입자들은 늘어가지만 이들을 보호할 법적 구제책은 미약한 실정이다.
◆ 신종전세대출사기, 당신의 집을 노리고 있다
정부에서 세입자 지원책의 일환으로 전세자금대출을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쉬워진 전세자금대출을 악용하는 신종대출사기가 등장해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전세가가 높은 경기도 일대 지역만을 골라 노숙자나 새터민들의 명의를 빌려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는 것.
최근에는 아예 집을 싼값에 매매한 뒤 담보대출을 받고 대출금만 받아 챙기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노숙자 김모(52)씨는 명의만 대여해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냉큼 명의를 빌려주었다. 전문사기단은 이를 가지고 각종 개인 신분 서류를 위조한 뒤, 싼 값에 집을 마련해 집을 담보로 최대한의 대출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가짜로 만들어진 서류들이 제1금융권의 심사를 통과해 대출금이 나왔다는 것이다.
담보 대출 당시, 버젓이 전세 세입자들이 세 들어 있었지만 월세 세입자로 위조한 서류만 믿고 실사 한 번 없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서류와 실사만 꼼꼼히 했더라면 이러한 대출사기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위조된 신분의 김씨에게 그렇게 많은 액수의 대출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전세가 상승의 해결책으로 3%대 낮은 금리에 전세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대출제도를 지원했다. 실제 이 같은 정부 정책으로 2009년 33조5000억원이었던 전세자금 대출은 올해 6월 60조1000억원에 육박하며 매년 대출 기록을 경신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은행은 채무 불이행이 되더라도 한국주택금융공사 측으로부터 대위변제를 받아 대출액의 90% 이상이 보전될 수 있다. 전세대출액을 상환 받지 못하더라도 빌려준 것은 은행이지만 은행의 손해는 미미한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 측의 꼼꼼한 심사가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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